AFTER SETTING STORY.04 - 마부교류세팅 + 비주얼 + 동작 앞선 AFTER SETTING 글에서 개인의 패턴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다. 창의력을 요구하는 세터들에게 보이는 일정한 패턴은 한계로 보일 수도 있다고 말 했었는데, 이를 돌파해 내기는 쉽지 않다. 보통 하나의 볼더링 문제는 한 명의 세터가 스타트부터 탑까지 맡아서 초안을 설계하고,포러닝 과정에서 팀원들과의 의사소통이 이루어져 결과물이 나오게 되는데 그래도 초안의 아이디어를 존중해 주려는 게 일반적이다.위와 같은 과정이 일반적인 프로세스로 알고 있는 나에게, 이 고정관념을 깨주었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. 2023년 6월 말 즈음, 일본의 Maboo라는 클라이밍 짐에서 교류 세팅을 할 기회가 우리 팀에게 주어졌었다.일본의 클라이밍, 특히 세팅에 관한 부분은 전 세계에서 높은 수준이라고 모두 말할 정도 였기에내가 보여 줄 수 있는 비기를 잘 준비하며 일본으로 출국했다. 기대와 긴장을 가지고 도착한 Maboo에는 오너인 Takeshi가 반갑게 맞아주었고, 인사와 함께 바로 세팅을 준비하였다.비행기를 탈 때부터 생각했던 동작을 내려고 홀드를 고르려던 순간 Takeshi는 먼저 사이즈가 큰 우드 볼륨부터 다 같이 설치하자는 오더를 내린다.그렇게 모두가 힘을 합쳐 벽의 여기저기에 큰 사이즈의 우드 볼륨을 다 붙이고 나니, 다음 오더가 내려왔다. "한 문제에서 각 세터는 한 동작씩만 내고, 다음 동작은 다음 세터에게 맡긴다."이게 무슨 소리인가..내가 고민해왔던 동작의 앞뒤를 내가 세팅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동작은 내 의도와는 다르게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닌가?처음 들어보는 세팅 방법에 멘탈이 산산이 부서진 순간이었다. 하지만 오너의 명령이니 그곳의 세팅 방법에 따를 수밖에 없었고, 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다른 세터가 마무리한 동작을 이어 나가며 이틀 동안 밤낮으로 세팅을 하였다. 그렇게 마지막 포러닝을 하며 전체 문제를 훑어보던 순간 왜 Takeshi가 위와 같은 세팅 방법을 제시하였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.처음 벽 이곳저곳에 우드 볼륨을 붙일 때부터, 그곳에 나오는 문제의 스타일과 동작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던 것이다. 예를 들어 코너 벽에서는 푸쉬와 스테밍동작이, 깐테에서는 꺾이는 벽을 힐훅과 토훅을 이용해 넘어가는 동작이,슬랩 벽 하단에 붙인 우드 볼륨에서는 착지, 혹은 런앤점프와 같은 동작들 같은 것이다. Takeshi는 이 특징적인 동작을 모두 예측하고 있었고, 각 벽에서 나올 수 있는 뻔한 동작들을각각의 세터의 색깔을 섞어서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.그리고 동작을 이어서 세팅하지 못하게 함으로써, 세터들의 고유 패턴을 없애 결과물들을 전부 신선한 느낌들로 채워 넣었다. 또한 처음에 붙였던 매우 큰 크기의 볼륨들로 벽은 더 입체적으로 설계되었고,그 볼륨을 따라붙은 홀드들은 전체 벽을 봤을 때 조화로운 비주얼을 보여주었다. 하나의 문제는 한 명의 세터가 맡아서 책임진다는 당시 나의 세팅 방법을 다르게 보여 줄 수 있는 큰 경험과깨달음을 얻고 온 교류 세팅이었다.(물론 혼자가 아닌 팀이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지만 말이다!) 지금도 가끔씩 혼자서 문제를 내는 게 지겨워진다면, 같이 세팅을 하는 동철 형과 윤석 형에게 제안하여 사용하는 방법이다.이 글을 보는 세터 분들도 가끔 세팅을 하는 게 막막해진다면, 사용해 보면 신선한 결과물들을 낼 수 있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?