AFTER SETTING STORY.02 - 루트 세팅의 시작 요새 막 일을 시작한 세터 분들에게 " 세팅을 왜 하세요? "라고 물으면, 열의 아홉은 " 제가 만든 루트를 다른 사람이 등반하는 걸 보면 좋아서요 "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 같다. 나도 그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. 빈 벽에 새롭게 홀드를 설치 할 때도 있었고, 홀드가 빼곡한 벽에 테이프를 붙여가며 볼더링 루트를 표시할 때도 있었지만, 모두가 등반하며 즐기던 그 모습을 보고,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닐까? 사실 그 당시엔 루트 세터로서 먹고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는 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, 당시 클라이밍 선진국이었던 프랑스 에 방문해 보니 정말 생각이 달라졌다. 우연찮게 좋은 기회로 프랑스에서 볼더링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는데, 나이가 좀 있어 보이시는 분이 대회장에서 세터로 활동하 는 모습을 보고• 아! 이곳은 루트 세터가 이미 직업으로 자리 잡은 곳이구나 '하는 생각이 들면서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프랑스처럼 클라이밍이 인기 있는 스포츠가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. (나중에 다시 보 니 그분은 Jacky Godoffe였다) 프랑스 여행 중일 때 동철 군한테 연락이 왔다. 새로운 클라이밍 짐에서 일을 막 시작했는데, 같이 일해보는 게 어떻냐고.나도 마침 세팅에 대해 궁금한 것이 많던 찰나에,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짐에서 일할 기회로 이어졌다. 그렇게 나는 다시 한국에 돌아와 마음을 다잡고 루트 세팅을 시작했다. 그 당시 새로운 짐의 세팅 총괄이었던 성재 형은 이미 해외로 등 반도 많이 다녀와보고, 외국의 볼더링 문화를 어떻게 하면 한국 에 접목시킬지 고민하는 사람이었기에 나도 옆에서 배울게 참 많았다. (당시에 한국에는 매주 루트를 교체하는 스타일의 암장 이 없었다)성재형을 필두로, 용택이 형, 현재 서울볼더스의 공동 대표인 민 규, 정엽, 범희형, 그리고 동철 군, 과 함께 이리 치이고 저리 치 이면서 맨땅에 헤딩하듯이 헤쳐나가기 시작했다.그 당시 가끔 나도 내가 어딜 향해서 나아가는지 잘 모르고 헤맬 때, 성재 형은 우리의 목적지를 설명해 주곤 했다." 언젠가 우리가 다 같이 마음 편하게 해외 등반 다녀올 날이 있을거야" 그 당시 성재형이 했던 말인데 참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말이었다.그렇게 나는 세팅에 대한 경험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.